택배업계가 불법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관행처럼 해왔던 ‘불법 파견 근로’에 제동이 걸렸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택배업체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불법 행위에 대한 개선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겠다는 의지는 강하지만 이로 인해 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택배업체들의 불법 행위를 지적하고 나선 것은 바로 고용노동부다. 최근 택배업체들을 대상으로 간담회와 현장실사 등을 진행했던 고용노동부는 불법 파견의 구조적 문제와 안전 사안을 지적했다. 고용노동부가 택배업계의 불법 파견에 대해 근로감독을 실시하게 된 배경, 그리고 불법적인 요소가 많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해왔던 택배업계의 실태와 향후 파견 구조의 변화 등을 살펴봤다.
고용노동부, 택배업계 불법 파견 구조 지적
택배업체 터미널 현장 근무 환경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조사가 실시된 것은 지난해다. 업계의 불법 고용에 대해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뒤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 고용노동부는 2016년 9월부터 12월까지 택배·물류 업종의 사업장 250개소를 대상으로 실시한 1차 근로감독 결과를 지난달 19일 발표했다.
근로감독을 실시하게 된 배경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대형 물류센터에서 불법 파견, 최저임금 미지급 등 노동관계법 위반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사회적 이슈 해결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는 대형 택배업체(7개소)의 물류센터, 물류작업 아르바이트를 상시 모집하는 인력업체 등 250개소를 선정해 최저임금과 휴식시간 등 근로조건·산업안전과 불법파견(위장도급) 여부에 대해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고용노동부 측은 이번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250개소 중 202개소에서 총 558건의 노동 관계법(근로기준법, 파견법 등) 위반이 적발됐으며, 이 중 33개소(37건)는 입건 등 사법처리를 했다고 밝혔다. 또한 29개소(34건)는 과태료 부과 등 행정처분을, 140개소(487건)는 법 위반사항을 시정하도록 했다고 전했다[도표 1].
△도표 1. 택배·물류 업종의 사업장 250개소에 대해 실시한 근로감독 결과(자료=고용노동부). | ||
적발된 위반 내용으로는 서면계약 미체결(131건)이 가장 많았고, 임금체불(117건), 불법파견(44건)도 상당수 적발됐다. 특히 고용노동부는 물류 상·하차 업무 특성상 업무량이 몰리는 특정시기에 업무를 다시 하도급함으로써 영세한 2차 하청업체를 중심으로 임금체불 등 기초고용 질서 위반이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일부 사업장(7개 대형 택배업체 포함 총 62개소)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 감독도 병행 실시하고, 안전 조치 등을 위반한 48개 사업장은 사법처리와 과태료 부과 등의 처분을 내렸다. 위반 내용은 안전보건교육 미실시(34건, 25.6%)가 가장 많았고, 컨베이어 비상정지 장치 미설치 등 현장의 안전조치 미흡(29건, 21.8%)도 다수 확인됐다.
이번 근로감독 과정에서 6개 대형 택배업체(우체국택배 제외)의 물류센터 운영 실태를 분석한 결과 대다수는 인력수급을 하청업체에 위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으며, 이들 하청업체는 다시 2차 하청업체에 물류 상·하차 업무를 재위탁하는 등 불법 파견(위장 도급)이 다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차 하청업체가 상·하차 업무 인력을 단순 모집 후 현장관리인 없이 물류센터에 공급하고, 1차 하청 업체가 이들을 직접 지휘·감독하는 등 불법파견(위장 도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다[도표 2].
△도표 2. 업체별 불법 파견(위장 도급) 운영 실태(자료=고용노동부). | ||
그 결과를 토대로 고용노동부는 8개 물류센터의 2차 하청 소속근로자 544명을 1차 하청업체에서 직접 고용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렸으며, 2차 하청업체 28개소에 대해서는 파견법상 무허가 파견 혐의로 즉시 입건했다. 아울러 공통적으로 최저임금법 위반(7개소, 1억 6,400만 원), 주휴수당 미지급(28개소 1억 5,000만 원),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가산금 미지급(44개소, 1억 400만 원) 등 노동관계법 위반도 다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도표 3].
△도표 3. 택배업체별 노동관계법(산업안전분야 제외) 적발 내용(자료=고용노동부). | ||
정지원 근로기준정책관은 “원청은 1·2차 하청 업체가 근로기준을 준수하고 산업재해를 예방하도록 지도해 나갈 책임이 있다”며, “대형 택배회사 등을 중심으로 불법 파견, 최저임금 등 법 위반사항을 조속히 시정토록 하고, 고용구조 개선을 통해 원청의 성과를 하청근로자도 누릴 수 있도록 적극 지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택배업계 개선의 필요성은 공감, 그러나…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와 7개 대행 택배업체(CJ대한통운, 우체국택배, 한진택배, 롯데택배, 로젠택배, KG로지스택배, KGB택배 등)가 모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고용노동부는 택배·물류센터 내 다단계 하도급과 같은 고용 구조를 개선하고, 하청업체의 근로조건 보호를 위해 원청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택배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개선 및 하청 근로자 근로조건 보호를 위해서는 대기업 원청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만큼 보다 원청인 택배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또한 자율개선계획을 수립해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들 대형 택배회사로부터 물류센터의 고용구조개선계획을 제출받아 이행 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한편 계획을 제출하지 않거나 이행 실적이 미흡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근로 감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의 요구로 자율개선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택배업체로서는 대의적인 명분 등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납득 가능하고, 개선의 필요성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난 수 년 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적인 요인들과 비용 증가 요인 등을 고려했을 때 하루 아침에 이를 개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개선의 의지가 확실한만큼 스스로 변화해나갈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 택배업체들의 입장이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따지면 고용노동부 측의 지적사항이 틀린 것은 없다. 그러나 현실은 뒤로 한 채 원론적인 주장만 해서는 안된다. 업체들 스스로 방법을 찾고 해결해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시간적인 지원 등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불법 알면서도 눈 감은 이유는 ‘구인난 때문’
택배업체들은 처음부터 불법적인 형태의 현장 근로자 채용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다.
인력 수급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불가피하게 2~3차 도급업체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 택배 물동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반면, 노동 강도가 강하고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현장에 나오기를 꺼려하는 근로자들이 많아지는 현상 탓에 인력 수급에 문제가 됐다는 것이 택배업체들의 주장이다.
택배업계에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불명예스러운 키워드가 있다. 택배현장을 ‘지옥의 알바’라고 부르는 것. 그만큼 근무 강도가 강하다는 뜻이며, 실제로 기피 업종 1순위에 올라 있다.
여기에 대형 물류센터의 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인력 수급은 더욱 어려워졌다. 물류센터의 근무 환경은 대부분 정해진 시간에 마무리되지만 택배터미널의 경우 물동량의 편차와 간선차량의 도착 시간 여부에 따라 늘어지는 등 실제 근무 시간은 들쑥날쑥하다.
그렇다고 인력수급을 위해 돈을 무한정 쓸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임금을 높이고, 복지환경을 잘 만들어주면 수급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택배업체들은 예산에 한계가 있고, 한정된 인건비로 최대한 많은 인력을 모집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 택배업체 관계자는 “원청인 택배업체들이 현장 인건비로 지불하는 금액은 인당 평균 10만 원에서 11만 원 수준이다. 그러나 1~2차 하도급 업체를 거치며 수수료를 떼면 실제 일용직 근로자들이 받는 하루 임금은 8~9만 원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2~3차 하도급 업체를 통해 인력을 수급하는 것 자체가 원청은 물론 일용직 근로자들에게도 좋을 게 없지만, 택배 현장에서 사람 구하는 것이 원체 어렵다는 점 때문에 바꾸기 힘든 현실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택배업체 관계자는 “1차 하도급 업체가 직접 인터넷 광고 등을 통해 인력을 수급하는 비율은 전체 인력 중 30%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1차 인력 수급 비율을 점진적으로 증가시키는 계획을 수립하고 철저하게 관리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휴수당 등 지급 시 인건비 25% 이상 증가할 듯
고용노동부는 택배업체들에게 일용직이라고 하더라도 최저시급과 휴식시간 보장, 주휴수당 등의 기본적인 사항들을 보장하고, 반드시 근로계약서 체결을 실시하라고 지적했다. 택배업체들은 이 같은 방침에 따르겠다는 입장이지만, 고민이 큰 것도 사실이다. 인건비가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급격한 비용 증가가 예상되는 부분은 허브터미널 현장 인력들의 임금이다. 서브터미널의 경우 투입되는 인력이 많지 않고, 작업시간도 짧은 반면, 허브터미널은 업무 특성상 근무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대부분 야간수당이 발생하게 된다. 허브터미널의 작업은 보통 오후 6시부터 다음날 6시에 끝난다. 대다수의 업체들이 근로시간을 10시간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12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경우 추가로 인력이 투입되기도 하며, 밤 10시 이후에는 야간 근로 등에 따라 1.5배의 인건비를 지불하고 있다. 명절 시기처럼 단 기간 내 물동량이 급증하는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작업이 늦어지거나 차량 운행에 차질이 발생해 화물이 늦게 도착하는 이유 등으로 하루에도 수천만 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일도 허다하다.
또한 택배업체들은 4대 보험과 주휴수당 등을 지급할 경우 업체별로 22~25% 이상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 역시 대부분 허브터미널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택배업체들마다 차이가 있지만 연간 터미널 인건비로 지불하는 금액은 최소 400억 원에서 60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택배업체들에 따르면 허브터미널과 서브터미널의 인건비 지출 비율은 70:30 수준이다. 즉, 전체 인건비를 연간 500억 원이라고 가정하면 허브터미널 인건비만 해도 연간 350억 원에 달한다. 350억 원에서 25%의 인건비가 인상된다면 택배업체들은 연간 87.5억 원의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택배업체들은 영업이익 수준이 1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점을 감안했을 때 비용 증가의 폭이 매우 크다고 보고 있다. 가뜩이나 현저히 낮은 택배단가로 인해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택배업체들로서는 또 하나의 큰 짐을 떠안게 됐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물론 택배업체들은 4대 보험 등은 현재 근로환경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분명 잘못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책정된 예산이 이를 반명하고 있으나 현장의 하도급 업체가 지키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실상 엄격하게 관리하지 못한 책임은 분명하다고 보고 있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이유는 결국 비용이다. 실제 현장에서 이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하도급 업체들이 떼어가는 수수료가 감소되거나 원청의 예산이 증가해야 한다. 그러나 원청인 택배업체 입장에서는 단가 인상이 어렵고, 가뜩이나 영세한 2~3차 하도급 업체들이 수익 악화를 이유로 택배 현장인력 수급에 나서지 않을 경우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택배업계에서는 정부가 원가를 올리기 위해서는 화주사와 적정 수준의 단가 계약을 유도하는 식의 노력을 병행해주기를 바라는 입장도 내비치고 있다. 여전히 ‘을’의 입장에서 단가 인상을 이야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택배업체 관계자는 “화주기업들은 택배단가를 계속 낮추려고만 하고, 원가 상승 요인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며 “적자를 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올해 인건비가 상승하게 되면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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