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현장에서의 라스트마일 배송기사들에 사망사고가 멈추지 않고 있는 가운데, 향후 적정 배송 물량이 산출되면 일선 배송기사들의 수익은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CJ대한통운은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 연이은 택배기사들의 사망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에 나섰다. 이날 기자 회견에서 정태영 택배부분장은 “현장에서 요구하는 택배 분류인력 4천명을 추가 투입할 예정이며, 이에 따른 별도의 배송수수료 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 부문장은 “추후 전문기관을 통해 성인이 하루에 배송할 수 있는 적정 택배물량을 산출 한 뒤 이를 초과해 일하지 않도록 바꿔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CJ대한통운은 “만약 이렇게 산출된 적정량을 넘는 초과물량이 나올 경우 택배기사 3~4명을 팀으로 묶어 배송을 분담케 하는 동시에 현재와 같이 1인 개별 택배기사에게 과도한 물량이 쏠리는 일을 방지하는 ‘초과물량 공유제’ 도입도 적극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택배 배송기사들의 수익은 크게 하락하게 될 전망이다.
현재 수익 700만원에서 적정물량만 배송하면 수입은 반토막 나
현재 대다수 택배기사들은 지역적 편차는 있지만, 1인당 하루 300개에서 많게는 400개 가량의 택배배송에 나서고 있다. 통상 1개당 배송수수료는 700원 안팎으로 하루 배송기사들이 얻는 수입은 하루 21만원에서 28만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한달 동안 25일의 배송에 나선다고 가정할 때 적게는 525만원, 많게는 700만원의 수입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CJ대한통운이 산출하게 될 적정 물량이다. 배송밀도가 조밀한 택배기업들의 경우라도 1개당 택배화물의 배송에 소요되는 시간을 5분 정도로 계산하면 1시간 배송물량은 12개. 일 10시간을 배송한다고 가정하면 하루 최대 적정 배송물량은 120개에 불과하다. 여기다 점심시간 1시간 정도로 넉넉히 제공한다면 적정 배송물량은 더 감소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같은 수치보단 훨씬 더 많은 배송에 나설 수 있지만, 하루 적정배송 물량의 버퍼를 줘도 최대 배송량은 200개 이상은 과도한 양인 셈이다.
한편 유사한 택배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쿠팡의 경우 365일 24시간 연중 무휴로 배송에 나서고 있는 쿠친(배송기사)들의 근무시간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 당장 배송직원 쿠친은 주 5일 근무와 주 50시간 미만 근로를 원칙으로 운영되며, 연 15일 이상의 연차휴가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쿠팡은 별도의 근무 관련 앱을 통해 자사 배송직원들의 근무시간을 관리, 과도한 근로를 사전에 차단하도록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쿠팡 관계자는 “배송직원 1인당 배송물량은 180개 이하로 책정해 운영하고 있으며, 막 입사한 초보 배송기사의 경우 하루 80개를 넘지 않도록 배송물량을 조절해 할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배송기사 1인당 하루 적정배송물량은 추가로 분류인력이 투입되어도 하루 200개 이상을 넘기지는 못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적게는 500만원, 많으면 700만원의 배송수수료 수입을 가져가는 택배기사들의 수입은 350만원에 그칠 전망이다.
월 수입 감소하면서까지, 일선 택배근로자 배송물량 줄일지는 의문
B택배기업 소속 수도권 지역 배송기사 이 모씨는 “택배노조가 주장하는 분류작업 추가 인력 투입 요구로 노동 강도는 감소하겠지만, 이 마저도 현재의 터미널 규모로는 크게 분류시간을 줄이진 못할 것”이라며 “여기다 적정 물량산출량이 200개 규모로 확정돼 하루 배송물량이 줄면 일은 편할 수 있지만, 수익은 반 토막이 나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모씨는 “노동의 강도는 낮추려다 정작 수익은 줄어드는 적정물량 산출은 택배노조의 주장이 일선 배송기사들의 발목을 스스로 잡는 역 효과로 나타날 수 있는 만큼 근본적인 택배 시스템 전환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선 터미널의 분류작업 인원을 추가 투입하는 한편 하루 적정 배송물량을 산출해 수배송 물량이 감소할 경우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는 결국 배송기사들의 수입 감소로 나타날 전망이다. 과연 이들이 수입 감소를 수긍하며, 하루 택배 배송량 감소를 감수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 9월 물류신문은 930명의 일선 택배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설문에서 응답자의 61%는 ‘지금의 근로시간이 과도하다’고 밝힌 반면 29.2%는 ‘지금의 근무시간이 적정하다’라고 답했고, 나머지 9.8%는 ‘수입이 증가한다면 추가로 더 근무해도 무방하다’고 응답했다. 근로시간과 근로강도가 6:4로 팽팽하게 갈린 셈이다. 이 같은 결과는 ‘수입 감소에도 연휴도입이 꼭 필요하다’에서 나타난 84.9%의 결과와 상반되는 모순된 결과다.
이 같은 결과로 볼 때 택배배송 근로자들은 지금의 수입이 감소할 경우 산출된 적정 배송물량을 수용할지 의문이다. 수입을 감소하면서 노동량은 줄이겠다는 근로자들이 얼마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이번 택배시장 사태가 택배기업과 일선 배송기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나타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택배가격 인상 없이 적정 택배배송 물량이란 이름으로 하루 배송량을 줄일 경우 일선 택배기사들의 사망률은 감소하겠지만, 수입은 크게 하락할 것이란 점이다.